[아름다운 우리말] 호두 두 알
호두는 호도(胡桃)에서 온 말로 호(胡), 즉 중국에서 들어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. 중국에서 들어온 복숭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우리가 알고 있는 호두는 주로 씨의 모양입니다. 그러고 보니 호두의 모양이 복숭아씨와 닮았습니다. 발목의 복숭아뼈도 호두 모양이네요. 호는 본래 오랑캐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정확히 중국은 아닐 수 있겠네요. 어쩌면 지금의 중국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. 아무튼 호(胡)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몇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.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이름은 당입니다. 우리는 중국이라고 하면 당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. 당은 중국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를 가리킵니다. 당진(唐津)은 당나라로 가는 포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실제로 당나라로 갔다기보다는 중국으로 가는 항구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. 일본 큐슈에도 똑같은 한자의 지명이 있습니다. 호가 쓰이는 말로는 호떡이 있습니다. 호떡은 중국 떡입니다. 호빵은 중국과는 관련 없는 빵으로 그저 상표라고 할 수 있으나 호떡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. 단지 추운 겨울에 ‘호~’ 하고 불어가며 먹는 따뜻한 느낌이 남아있습니다. 호주머니도 중국식 주머니입니다. 원래 우리 주머니는 옷에 달려있지 않고 따로 차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듯합니다. 복주머니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. 호박에도 호가 보입니다. 박은 우리말이지만 호는 중국을 나타냅니다. 한편 후추는 호로 보이지 않습니다만, 호추에서 바뀐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원래 후추는 고쵸가 후추였습니다. 그런데 고쵸가 고추가 되면서, 호추로 바뀌었다가 후추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. 고추와 후추가 관계가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영어에서는 후추와 고추가 모두 ‘Pepper’입니다. 후추보다 더 매운 고추가 들어오면서 세력이 약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. 정월 대보름에는 부럼이라고 해서 딱딱한 것을 깨뜨려 먹습니다. 땅콩이나 호두, 밤 등을 깨서 먹습니다. 저는 언어적으로 보름과 부럼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. 그런데 일반인들은 부럼에서 부스럼을 떠올렸나 봅니다. 부럼을 먹으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으니 말입니다. 저는 대보름이면 가득 차 있으니까 좋은 것이지만 다시 작아질 것이기에 그에 대한 준비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기억합니다. ‘달도 차면 기우나니’라는 민요의 한 부분도 그런 의미입니다. 부럼을 깨는 소리에 귀신들도 놀라 달아날 겁니다. 어쩌면 우리의 자만도 깨질 수 있겠습니다. 깨뜨리면서 우리에게는 뜻밖의 즐거움도 있었을 겁니다. 깨뜨리는 것은 한계를 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합니다. 그런데 우리는 호두를 깨뜨리다가 두 알쯤은 남겨 둡니다. 그러고는 반질반질해지도록 두 알을 손바닥 위에서 비빕니다. 뽀드득 소리가 왠지 뿌듯하죠. 손 위에서 추억이 돌아가고 작은 즐거움이 됩니다. 물론 손바닥 혈을 자극하여 건강을 지켜주는 건 덤으로 얻은 행복입니다. 한참 지난 후 책상 서랍에서 호두 두 알을 발견하고 웃음 짓던 기억이 있습니다. 종종은 절대로 안 깨질 것 같던 호두가 한참의 세월을 지나 손안에서 툭 깨지는 경험도 합니다. 고통도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다 닳아버리는 체험입니다. 그사이 나는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자랍니다. 정월 대보름이었습니다. 지나가다가 호두를 한 되 샀습니다. 주변의 사람에게 두 알씩 나눠주며 마음과 몸의 행복을 기원했습니다. 자주 가는 카페의 직원에게도 두 알, 분식집 사장님께도 두 알, 부대찌개 주인께도 두 알씩 드렸습니다. 모두 웃습니다. 집에 와서 아내와 아들들에게도 두 알씩 주었습니다. 집이 온통 뽀드득 천지입니다. 소란스러운 행복이네요. 시끌벅적합니다. 조현용 /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호두 호두가 한참 후추가 관계 정월 대보름